
무슬림 문화 이해와 여행자 예절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 인구가 많은 지역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과 일상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도는 하루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지며, 이 시간만큼은 상업시설도 일시적으로 문을 닫거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를 들어 쿠알라룸푸르의 자멕 모스크 인근을 산책하다 보면, 오후 1시경 기도시간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리며 주변 상점이 잠시 영업을 멈추기도 한다. 이럴 때 여행자는 가급적 물건을 사고파는 대신 모스크 주위를 조용히 돌아보고, 기도 중인 신도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실 때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와 알코올은 금지 음식에 속하며, 길거리 음식점에서도 메뉴판에 ‘HALAL(할랄)’ 마크가 없는 곳에서는 내부를 방문하기 전에 직원에게 문의하는 것이 옳다. 예컨대 페낭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작은 찻집을 찾았던 한 여행자는 ‘할랄 여부’를 미처 확인하지 않고 들어갔다가 내부 포장재에 돼지 뼈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이처럼 무슬림 문화권에서는 음식 선택이 곧 사회적 예의로 연결되므로, 사전에 앱이나 표지판으로 ‘할랄 인증’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태도를 갖춘다면 현지인과의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사와 접촉 예절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슬림 남녀 간에는 악수나 포옹 같은 신체 접촉을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성 여행자가 현지 남성과 대화할 때는 말끝을 낮추고 절제된 몸짓을 유지하는 편이 안전하다. 반면 같은 성별끼리의 인사는 활발하며, 특히 ‘아싸람알라이쿰(Assalamu alaykum)’ 인사는 현지인에게 큰 호감을 준다. 실제로 조호르바루에서 현지 대학생 가이드와 동행했던 여행자는 첫 만남에서 이 인사말을 사용함으로써 훨씬 친근한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라마단 기간 중 주의할 점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월에 해당하는 한 달간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신앙심을 점검하는 시기다. 외부인은 의무적으로 금식에 참여하지 않지만, 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의 고전 도시 말라카를 방문했을 때 거리 음식 노점이 이른 오후부터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거나, 커피숍이 닫힌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여행자가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꺼내 먹으면 현지인에게 무례로 비칠 수 있으므로, 미리 준비한 생수나 간단한 간식은 숙소나 차량 안에서 해결하는 편이 좋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질 무렵부터 시작되는 일명 ‘이프타르(Iftar)’ 만찬이 중요하다. 이때 많은 가정과 식당이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이프타르 메뉴를 제공하며, 이 기회를 통해 현지인과 교류할 수 있다. 2024년 말레이시아 페탈링 자야 인근 식당에서는 매일 오후 7시경 길게 줄을 선 주민들에게 나시르막, 사모사, 달카레 등의 전통 음식이 빠르게 소진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우연히 동석한 말레이인 가족에게 초대를 받아 함께 식사하고 값진 대화를 나눈 사례도 있다. 여행자에게는 이프타르 초대가 문화 체험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라마단 기간 중에도 관광명소는 대부분 운영하나, 종교 의식을 위해 일부 구역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공식 웹사이트나 현지 관광 안내소를 통해 휴관 일정과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특히 이슬람 사원 내부 견학을 계획하고 있다면, 여성은 긴 소매와 긴 바지를, 남성은 무릎 길이 이상의 하의를 갖춰야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준비만 갖춘다면 라마단 중에도 안전하고 뜻깊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말레이 전통 복장과 축제 소개
말레이시아의 다문화 사회에서 ‘말레이인’이라 하면 대체로 이슬람을 믿는 말레이족을 일컫는다. 그들의 전통 의상으로 대표적인 것은 남성용 ‘바주 말레이(Baju Melayu)’와 여성용 ‘바주 쿠룽(Baju Kurung)’이다. 바주 말레이는 상의와 하의가 같은 천으로 만들어지며, 전통적으로는 실크나 면 소재를 사용한다. 말레이 반도 북부 코타바루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자녀 결혼식 때 배색을 맞춘 바주 말레이를 입고 나타나, 마을 전체가 경사스러운 분위기로 물들었던 기억을 여행자에게 전하기도 했다.
말레이족의 대표 축제는 이슬람력 10월 1일에 해당하는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Hari Raya Aidilfitri)’와 12월 10일 경의 ‘하리 라야 하지(Hari Raya Haji)’다.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는 라마단 종료를 축하하는 축제로, 가족끼리 모여 특식인 렌당(Rendang)과 켈라팟(Kerupuk)을 나누며 만찬을 즐긴다. 쿠칭의 한 가정집에서 초대받은 외국인 여행자는 손님 방을 손수 장식하고, 어린아이들과 전통 놀이를 즐기며 진정한 ‘라야(Raya)’ 기분을 만끽했다. 하리 라야 하지 때는 가축을 희생해 고기를 이웃과 나누는 ‘퀼란(Qurban)’ 의식이 열리며, 축제가 끝난 뒤에는 거리 곳곳에 협동식당이 마련되어 모든 이에게 식사가 제공된다.
이 밖에도 말레이 전통 복장과 연계된 이벤트로 ‘바틱 페스티벌(Batik Festival)’이나 ‘송킷 마켓(Songket Market)’이 각 주에서 열리는데, 화려한 문양의 배틱 천과 금사로 수놓은 송킷 직조 과정을 직접 관람하고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사바주 코타키나발루에서 열린 배틱 워크숍에서는, 한 여행자가 자신만의 패턴을 그려 넣은 스카프를 완성하며 현지 장인과 웃음 가득한 교류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말레이 전통 복장과 축제를 체험하는 것은 단순한 ‘의상 체험’이 아닌, 말레이 사회의 역사와 공동체 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